페이지

레이블이 바이블♡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바이블♡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5년 2월 24일 화요일

피노키오증후군[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교회]

피노키오증후군


최근 모 방송사에서 종영한 드라마 ‘피노키오’는 43명 중 1명꼴로 거짓말을 하면 반사적으로 딸꾹질을 하는 가상의 ‘피노키오증후군’을 소재로 삼았다. 이 드라마는 동화 속 피노키오처럼 거짓말을 하면 바로 티가 나기 때문에 참말만 하며 살아야 하는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이 수습기자가 되면서 진정한 기자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형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엄마가 상류층의 압력과 욕심으로 여론몰이를 하여 친구의 가정을 파탄 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엄마가 언론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등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현실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진실을 선택한다.

기자로서의 사명을 저버리지 않고 진실을 고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다. 그들은 “기자의 거짓말은 대중의 눈을 멀게 할 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진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며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거짓은 그들에게 있어 체질적으로 맞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그들의 세상은 정의와 진실이 살아 꿈틀거리고, 불의와 거짓은 맥을 못 춘다. 누구나 꿈꾸는 세상이다.

언론인이라면 마땅히 진실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어떤 사건에 대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진실만을 보도해야 한다. 드라마 ‘피노키오’는 여기에 하나 더 중요한 물음표를 던진다. 언론을 접하는 대중들도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사고들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론몰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일 것이다.

2천 년 전 실제로 ‘피노키오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진실만을 말하고 진실을 가려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진실을 본 이상 거짓은 말할 수 없었고, 따를 수 없었다. 그들이 진실을 버렸다면 그들의 삶은 편안했을 테지만 체질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차라리 고난을 택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한복음 10:27)

영적 피노키오들은 로마의 거센 핍박을 받고도 죽음을 불사했다. 하나님의 진리가 사람에 의해 변질되기 시작했을 때도 그들은 진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지킨 유월절을 폐지했을 때 그들은 목숨을 던져 유월절을 고수했다.

“우리는 진정 올바르게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아무것도 덧붙이거나 감하지 않았습니다. … 이 사람들은 모두 조금도 빗나가지 않고 신앙의 규칙을 따르면서 복음에 따라 14일을 유월절로 지켰습니다. … 모든 성서를 연구해온 나는 나를 협박하기 위해 취해지는 모든 일에 전혀 놀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들은 ‘우리는 사람에게 순종하기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은성출판사, 294~295쪽)

목숨을 버릴지언정 거짓을 따르지 않았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당시에는 손해를 본 것 같았으나 그들은 천국의 축복을 받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시대 우리는 어떠한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할까.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진실의 길을 선택한 멋진 피노키오가 되어보면 어떨까.
출처:패스티브닷컴

2015년 2월 2일 월요일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받는 침례<하나님의교회>



그래서,,
침례는 죄사함과 영생의 권세가 있는 
구원자의 이름으로 받아야합니다.
성부 여호와,성자 예수님..
성령시대엔 새 이름으로 받아야
우리가 온전한 죄 사함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 이름의 주인공은..
 하나님의교회에서만이
알수있습니다^^

2015년 1월 24일 토요일

플러그와 콘센트(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전기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이사를 갈 때나 집안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인테리어를 할 때도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전기제품의 플러그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의 위치다. 전기제품의 사용을 위해서는 근처에 꼭 콘센트가 
있어야 하고 콘센트에는 제품의 플러그를 올바로 꽂았을 때라야 가능하다.



각 가정의 부엌만 보더라도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믹서기 등 다양한 전기제품들을 사용한다. 만약 전기밥솥을 사용하여 밥을 짓는데 믹서기의 플러그를 꽂는다던가, 고장 난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는다면 시간이 지난 후 밥솥 안에는 생쌀과 물이 그대로 있을 것이다. 밥을 짓기 위해서는 올바른 플러그를 제대로 된 콘센트에 꽂아야만 한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생이라는 결정체를 얻기 위해서는 신앙의 플러그를 제대로 된 콘센트에 올바로 꽂아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일서 2:25)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생은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을까. 구원의 약속은 믿으면 무조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불법이라는 잘못된 플러그를 꽂는다면 절대 영생은 기대할 수 없다. 불법자들은 자신들의 믿음대로 아무 곳에나 플러그를 꽂았다.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까지 행하며 하나님을 불렀으나 콘센트는 반응이 없다. 고장 난 콘센트는 몇 시간을 또는 몇 날, 며칠을 꽂아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신앙을 자신의 생각에 맞춰 무턱대고 믿었다가는 이런 결과만 얻게 된다. 자신의 플러그를 잘 살펴서 고장 난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어디에 꽂아야 확실히 제품이 작동되는지 명확히 알아봐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자들에게만 ‘영생’이라는 결과물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계명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유월절 하나만 보더라도 믿음의 플러그가 올바른지 확인할 수 있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시기 전날 허락하신 유월절 성만찬이다. 이 속에는 죄사함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 죄를 사함받는다는 것은 영생을 허락하신다는 의미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유월절을 지켜 영생 얻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A.D. 325년 콘스탄틴 황제는 유월절을 폐지시켰고 이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플러그를 꽂아도 돌아오는 것은 생쌀에 맹물이다.

이제는 자신의 플러그를 제대로 살펴야 한다. 믿음이라는 플러그가 유월절이라는 콘센트에 잘 맞춰져야 영생의 결정체가 만들어진다. 재림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유월절을 회복해주셨고 이를 통해 영생을 얻도록 하셨다. 영생을 원한다면 믿음의 플러그가 유월절에 잘 꽂혀 있는지 살펴야 한다. 유월절이라는 콘센트가 없다면 영생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새언약 유월절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2015년 1월 21일 수요일

잠잠히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하나님의교회♡

잠잠히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고후 1장 23절~2장 4절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줄 확심함이로라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를 방문하려고 했던 
바울은 성도들의 분쟁 소식을 듣고 
대신 디도에게 편지를 주어 그를 고린도 교회에 보냅니다.

이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실망을 해서도 성도들을 미워해서도 아닙니다. 
자신이 직접 고린도 교회에 방문하게 된다면 성도들을 엄격하게 대하게 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배려이자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성도들을 직접 징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편지를 통해 그들을 타이르고 문제가 자체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방문을 연기했습니다.

그렇게 사도바울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아끼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잘못이 있으면 직접 꾸짖지 아니하고 
참고 인내해 주었던 사도바울을 통해 잠잠히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2015년 1월 12일 월요일

비타민 D와 빛/하나님의교회

비타민 D와 빛


겨울이 되면 자연스레 바깥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최근 한 포털사이트에서 약 400명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놀랍게도 10명 중 9명이 ‘계절성 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답했다.

일명 ‘행복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은 햇볕을 쬐는 동안 생성된다. 그러나 겨울은 해가 짧고 날씨가 추워져 햇볕을 받는 일조량이 줄어들어 세로토닌 생성도 따라 줄게 된다. 겨울이면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비타민 D를 섭취하는 것이다. 한국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의 93%가 비타민 D 부족이라고 한다. 비타민 D가 부족할 경우 우리 몸은 어떤 이상반응을 보일까?

비타민 D가 부족할 경우, 심장마비나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 비타민 D가 부족한 사람은 부족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어떤 이유로든 사망할 위험이 3배나 높다고 한다. 이외에도 우울증, 치매, 결핵, 폐렴도 비타민 D가 부족할 경우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근육 부상이 잦은 이유도 비타민 D 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최근에는 칼슘 부족이 원인으로 알려진 갱년기 여성들의 골다공증이나 뼈 관련 질병에 비타민 D를 처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또한 암 환자가 증가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비타민 D와 관련이 있어 암 질환의 치료와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처럼 비타민 D가 부족할 경우 우리 인체에 발생되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의료기관에서는 평소 고등어나 참치와 같은 생선류나 마른 표고버섯, 달걀 노른자, 우유 등과 같은 음식물 섭취를 권장한다. 물론 간편하게 비타민 보충제를 먹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햇빛’이다. 주 2~3회씩 낮 10~4시 사이에 10~20분 정도 햇빛을 쬐면 비타민 D가 증가한다. 한마디로 햇빛을 받는 것만으로도 우리 몸은 한층 건강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빛을 받아야 사는 것이 과연 육신뿐일까? 하나님은 빛이라 하셨다(요한일서 1:5). 하늘에서 지은 죄로 인해 어두움 가운데서 헤매던 우리의 영혼이 살 수 있는 길도 빛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8:12)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21)

과연 빛으로 임하신 예수님께서 좇으라 하신 진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다. 창조주의 권능을 기념하는 주간절기인 안식일을 비롯하여 3차의 7개 절기가 그것이다(누가복음 4:16, 마태복음 26:17~28, 요한복음 7:2~37). 이것이 우리 영혼을 건강하게 하고 살게 하는 영적 비타민 D인 것이다.

이제는 이 시대 빛으로 임하신 새 예루살렘 영광의 빛 가운데로 나아갈 때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 열왕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이사야 60:1~4)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새 예루살렘 어머니의 빛을 받는 것, 우리 영혼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015년 1월 2일 금요일

새언약의 안식일 무슨요일? /하나님의교회




새언약의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 입니다.
카톨릭 교리서에서도 안식일이
토요일임을 명백히 증거하네요!!
예수님도 제자들도 안식일을 토요일에 지켰다면
우리도 당연히 지켜야 되는 거 아닐까요?

안식일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2014년 12월 22일 월요일

크리스마스가 하나님의 계명일까? /하나님의교회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닌 
태양신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세상 교회는 성경에 아무런 근거없는 날을 열심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하나님의교회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본 보여주신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2014년 12월 19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 잠잠히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잠잠히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고후 1장 23절~2장 4절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줄 확심함이로라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를 방문하려고 했던 
바울은 성도들의 분쟁 소식을 듣고 대신
디도에게 편지를 주어 그를 고린도 교회에 보냅니다.

이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실망을 해서도 
성도들을 미워해서도 아닙니다. 
자신이 직접 고린도 교회에 방문하게 된다면 
성도들을 엄격하게 대하게 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배려이자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성도들을 직접 징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편지를 통해 그들을 타이르고 문제가 자체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방문을 연기했습니다.

그렇게 사도바울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아끼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잘못이 있으면 직접 꾸짖지 아니하고 
참고 인내해 주었던 사도바울을 통해 
잠잠히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2014년 12월 17일 수요일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하나님의교회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

사도시대로 접어들면서 복음은 유대뿐만 아니라 지중해의 여러 이방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다른 규례와 마찬가지로 여자 성도들이 수건을 쓰는 문제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순종하여 잘 지켜왔다. 그런데 차츰 남녀평등을 선호하는 부류들이 생겨나면서 “남자들이 쓰지 않는 수건을 구태여 여자들이 써야 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고린도 지역에서 반발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이에 사도 바울은 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여자들이 마땅히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함을 강조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린도전서 11:1)

사도 바울은 먼저 성도들에게 전하는 가르침이 자신의 사상이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이어 예배 때 여 성도들은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머리수건 규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배드릴 때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3~5)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이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한 의미는 구약의 율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 앞에서 수건을 벗는 행위를 아주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다. 또한, 포로로 잡혀온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수치스러움을 씻기 위하여 그 여자의 머리를 밀었다. 다시 말해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한 말씀은 대단히 수치스럽다는 뜻이다. 이것이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그 첫 번째 이유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는 작은 것 하나라도 의미 없이 정하신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우리가 천국 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정하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배를 드릴 때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규례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남자 성도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하며, 여자 성도들은 수건으로 그 머리를 가려야 한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의교회 모든 여성도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는 
규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2014년 12월 16일 화요일

이교주의의 혼합물, 크리스마스 / 하나님의교회

이교주의의 혼합물,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의 합성어다. 
흔히 그리스도의 뜻을 기리기 위한 의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이때 행해지는 의식은
예수님의 생애나 가르침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교도에서 유입된 잡다한 의식의 혼합물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는 그의 저서에서
“전 로마와 그리스에서 12월 25일을 공휴일로서
축하하는 최대의 이교 예배는 이교 태양신 예배인
미트라 종교였다.
이 동계 축제를 탄생 즉, 태양의 탄생이라고 불렀다”고 밝혔다.

결국 태양신의 탄생일이 기독교 내로 유입되면서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둔갑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크리스마스 때 카톨릭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의식들이
태양신교의 의식과 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
태양신교의 의식 중 12월이 되면 3대 축제가 열렸는데,
기독교가 그 풍습 또한 그대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고 받는 풍습은,
3대 축제 중 하나인 시길라리아(Sigillalia) 제일에 어린아이에게 인형과 같은
선물을 나눠주는 풍습을 계승한 것이다.
며칠 동안 환락을 즐기는 것도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제일의 모습 그대로다.

태양신교의 사상은 크리스마스트리와도 연관이 있다.
고대 바벨론 전설에 따르면 한 상록수가
죽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솟아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새로 솟아난 상록수가 죽은
태양신 니므롯이 그의 아들 담무스 안에서 회생한 것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이 외에도 이집트, 로마 등 여러 국가에서 사철 푸른 나무,
일명 거룩한 나무에 대한 샤머니즘적인 숭배사상이 있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새해가 되면 악마를 물리치기 위하여
집과 주변을 상록수로 꾸며왔던 주술적인 신앙의 형태가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종려나무를 신성시했으며,
로마에서는 전나무를 거룩하게 구별하고 농신제 기간 동안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열매를 장식하며
태양신을 숭배하는 신앙적 행위로 기념해 왔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이러한 나무에 대한 사상을 재현한 것이다.

'Festivals, holy days and saints’ days'는
“크리스마스 나무의 도금한 견과나 볼들은 태양을 상징하며 …
동지절의 모든 축제는 크리스마스에 흡수되었고 …
크리스마스 나무는 오딘(Odin, 스칸디나비아의 신)의 거룩한 전나무에
바친 영예에서 온 것”이라고 기록했다.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산타클로스 역시,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
270년경 소아시아 지방(지금의 터키)의 항구도시 파타라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스(St. Nicholas)가 산타클로스의 효시다.
니콜라스는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결혼을 하지 못하는 세 자매의 사연을 듣고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금 주머니를 굴뚝으로 떨어뜨렸고
금덩이는 벽에 걸어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도움으로 세 자매는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이야기는 유럽으로 전해졌다.
12세기 초 프랑스의 수녀들이 니콜라스의 축일(12월 6일)의 하루 전날인
5일에 성 니콜라스의 선행을 기념했고 이후
전 지역으로 이러한 풍습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당시 이들이 기념했던 니콜라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의 모습과는 다르다. 현재의 산타클로스는 영리 목적으로 조작된 것이며,
물론 그리스도와는 관계가 없다.
 “오늘날처럼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일반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로,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가 효시였으며,
본래 날렵하고 키가 큰 모습에서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은
토마스 나스트라는 19세기의 만화가가 20년 동안 잡지에
성탄절 삽화를 그리면서 완성한 것이다.
또 현재처럼 빨간 옷을 입게 된 것은 1931년 미국 해돈 선드블롬이
코카콜라 광고를 위해 그린 그림에서 유래한 것이다(시사용어사전 2003).”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약 300년 후,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로 제정되면서 이 같은 태양신 숭배 및
이교도의 풍습이 기독교화된 것이다. 그
것은 대부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태양신 축제에 참여하고자 했던 부패한
기독교인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이해해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풍습과 의식이 그리스도가 아닌
태양신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

2014년 12월 8일 월요일

어느 어머니의 기억하나♡하나님의교회

<어느 어머니의 기억하나>

“그녀가 모든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름도, 나이도, 사랑했던 나조차도….”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중 철수의 대사다.




영화 속 여주인공인 수진은 건망증 때문에 남편의 도시락을 밥만 두 개 싸주거나, 매일 가는 집조차 찾지 못하고 헤맬 때도 있다. 철수는 그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수진의 건망증은 점점 심각해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게 된 수진은 자신의 뇌가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남편 철수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대.”

기억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가히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물론, 나쁜 기억은 하루빨리 잊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소중했던 추억,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내 기억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현대의학에서는 기억을 잊어버리는 현상을 '기억상실증'이라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서서히 기억을 잊어버리는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박사에 의해 최초로 보고되었다.

알츠하이머병은 매우 서서히 발병하여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경과가 특징적이다. 초기에는 주로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에서 문제를 보이다가 진행하면서 언어기능이나 판단력 등 다른 여러 인지기능의 이상이 동반되다가 결국에는 일상생활 기능을 모두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는 암보다 무서운 질병으로 취급받는다. 발병 연령은 65세 이상 10명 중 1명 꼴로 나타나며, 때로는 40~50대, 심지어 20~30대에서도 발생하기도 한다. 정확한 발병 기전과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지난 9월 15일 부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파출소에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 두 개를 든 채 한 시간째 동네를 서성이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관들이 현장에 도착했으나 할머니는 자신의 신상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그저 보따리를 껴안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당시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 할머니 차림새로 미뤄 인근 동네 주민일 것으로 판단해 할머니를 아는 주민을 찾아나섰다. 결국 신고 접수 6시간 만에 이웃 주민을 만나 할머니의 딸이 출산했음을 알게 되었고, 딸이 입원한 한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원에 도착한 할머니는 딸을 보자 반가워하며 자신이 가져온 보따리를 풀었다. “어서 무라(먹으라)”는 말과 함께 펼친 보따리에는 출산한 딸에게 먹일 미역국과 밥, 반찬 등이 들어 있었다. 온전치 못한 정신임에도 할머니가 놓지 않았던 기억 하나, 이것이 자식을 향한 모정이 아닐까.

지구라는 공간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중요한 기억을 잊은 채 살고 있다. 자신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존재의 근본도,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아름다웠던 천상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은 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인류를 기억하고 있는 분이 계신다. 바로 어머니 하나님이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

2014년 12월 5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가 말하는 성경은?

하나님의교회가 말하는 성경은?


신화로만 여겨왔던..
성경을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사실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uccspace.net


2014년 11월 27일 목요일

두번째 나타나시는 그리스도는 언제오실까?


두번째 나타나시는 그리스도는 언제오실까?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면
언제 그리스도가 오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24:32)
.
.
.
이스라엘의 독립은 재림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시기!!

예언따라 이스라엘이 독립한 1948년도에 다윗의 위에
앉으신 안상홍님은 이 땅에 다시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셋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셋(?) 하나님의교회

셋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셋

(1) 성삼위일체의 의미

성삼위일체(聖三位一體)란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이 한 몸이라는 뜻이다. 
즉, 성부 여호와, 성자 예수, 성령이 각각 개체가 아니라 한 분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물(H2O)은 액체다. 그러나 영하의 온도에서는 고체인 얼음이 되고, 물을 끓이면 기체인 
수증기가 된다. 물, 얼음, 수증기는 모양과 이름이 다르지만 근본은 모두 물((H2O)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라디오의 모노드라마와도 같은 것으로 성우 한 사람이 아버지, 아들, 손자 세 사람의 음성으로 
극을 엮어가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하나님께서는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 세 시대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 다른 이름으로 구원사역을 펼치셨다. 하지만 근본은 한 분 하나님이시다.

(2) 여호와와 예수님은 한분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이 땅에 오실 메시아,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예수님을 일컬어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곧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신 여호와시기 때문이다. 즉,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한 분이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근본 하나님의 본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빌립보서 2:5~8, 로마서 9:5).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이사야 44:24)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만물을 예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로새서 1:16)

만약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한 분이 아니라면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각각 존재해야 하지만 단 하나의 세계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는 개체가 아닌 일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3) 여호와와 성령은 한 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곧 성령이라는 사실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세히 기록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10~11)

사람의 사정은 그 사람의 영 외에는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의 영, 즉 성령 외에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이는 성령이 하나님 자신이며,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일체라는 의미다.

(4) 예수님과 성령은 한 분

…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 2:1)
예수님을 ‘대언자’라고 하였는데, 대언자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σ)’를 번역한 것이다. 
난하주에는 보혜사로 해석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보혜사가 성령이라고 가르쳐주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요한복음 14:26)
요한일서에서는 성자 예수님을 보혜사라고 하였고,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을 보혜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성령은 한 분이 분명하다.

(5) 성령은 인격체다

성령은 바람이나 전파처럼 거시적인 존재가 아니다. 감정을 지니고 계시고(로마서 15:30), 근심도 하시고(에베소서 4:30), 말씀도 하시고(요한계시록 2:7), 탄식도 하시며(로마서 8:26), 기도도 하시고(로마서 8:26), 가르치기도 하시고(요한복음 14:26), 훼방도 당하시는(마태복음 12:31~32), 분명한 인격체다.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19~20)

성령이 바람이나 전파 같은 무형의 힘이라면 어떻게 성령의 이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성령에게 이름이 있다는 말씀만으로도 성령이 곧 인격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세 시대를 통해 각각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셔서 구원의 섭리를 이루어가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신 세 가지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행하고 기념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버지(聖父)로 섭리하셨을 때의 이름은 여호와였다. 또 아들(聖子)로서 역사하셨을 때의 이름은 예수였다. 성령시대, 성령(聖靈)으로 나타나실 때의 이름은 무엇일까.


오직 하나님의교회에서만 성령시대에 나타나실 구원자를 알 수 있습니다^^

2014년 11월 5일 수요일

성령과 신부되신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




생명수는 성령과 신부되신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영접하는 자가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의 약속이 있는 생명수 받으러 오세요~



2014년 10월 23일 목요일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하나님의교회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후기 문장가였던 유한준(1732~1811) 선생이 남긴 글이다. 
이 글은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에 인용하면서 
세인들의 마음에 명언으로 새겨졌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 가령 꽃을 사랑하면 꽃에 대해 알게 되고,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듯,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런데 기성교인들은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고, 
성경은 문자 그대로 ‘보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다. 
아무리 성경을 열 번, 백 번 통독하며 외운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성경을 본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6)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성경의 예언을 볼 수 있으며 믿을 수 있다. 
이것이 유한준 선생의 글처럼 사랑하는 토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알아보자.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성령시대의 구원자가 누군지 말이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기억하자. 하나님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믿게 되나니, 그때 믿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2014년 9월 3일 수요일

지구 창조, 그 순간 속으로 > 하나님의교회

지구 창조, 그 순간 속으로


성경을 사실이라고 믿습니까, 라고 물으면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이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 성경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이다.


어쩌다 성경이 믿지 못할 책이 됐을까. 그 이유에 대해 성경은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보다 높기 때문에 인간의 눈으론 도저히 하나님의 영역을 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고 알려준다. 그나마 현대에는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이 볼 수 
있는 영역이 전보다 넓어졌다. 이로 인해 그동안 이해할 수 없어 허구라고 생각해왔던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지구 창조에 대한 말씀이 그렇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욥기 26:7)

고달픈 삶으로 인해 하나님을 잠시 잊었던 욥-마치 우리와 같은 모습이다-에게 주신 
말씀이다. 땅을 공간에 다셨다는 말씀은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과학의 발달로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누구나 쉽게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고대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지구가 무엇엔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언제 사람들이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일까. 바로 17세기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후부터다.

그러나 성경은 욥기서가 기록된 때, 즉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사람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실을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성경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록이며 
사실이라는 확실한 증거다.

물의 순환 과정에 대한 말씀도 있다.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욥기 36:27~28)

이러한 물의 순환 과정을 사람들이 온전히 이해한 때는 다름 아닌 16, 17세기 페로와
 마리오트의 실험결과 최초 확인됐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3500년 전 정확히 물의 
순환 과정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이 과학보다 수천 년 앞서서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성경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록이며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성경에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수많은 사실들이 있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볼 수 있는 영역은 너무나 좁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깨닫고 좀 더 
겸손한 자세로 성경을 대해야 하지 않을까.
                                                                                           출처 : https://pasteve.com

2014년 8월 7일 목요일

바이러스VS유월절


최근들어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 
중국 윈난성 지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 .. 
기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계속해서 전 세계에서는 재난과 재앙이 가득하다.


                                                                                                          사진출처:sbs뉴스  

그러나,
성경은 이미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다.

마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

눅21:11 처처에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신기하게도 너무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재앙 가운데에서 보호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유월절 진리이다. 
이땅에서는 바이러스를 치료하기 위해 백신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적백신인 유월절 진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월절 지키는 하나님의교회에서 꼭 지키시고
함께 천국가요^^


2014년 7월 23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을 관심 갖지 않은 이유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으나..
세상 사람들은 자기만의 신념과 신앙만을 고집하며..
성경속의 예언된 어머니하나님을 이상히 여깁니다.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경속 마지막 예언의 말씀을 끝마치기전..

하나님께서는 '성령과 신부"를 언급하시며 우리가 누구에게 생명수를 받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구원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사단은 항상..

사42:18~20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 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찌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네가 많은 것을 볼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이 말씀처럼

[출처:네이버]

세상사람들에게 유의치 않는 마음을 주어서 
보이는 어머니하나님을
온갖 거짓말로 보지 못하게 하고
 관심도 갖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구원받고자 하는자 오직 성경 말씀만을 믿고
예언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안목을 가져
성령시대의 구원자이신 아버지 안상홍님 어머니하나님 믿어
영원한 천국에 꼭 입성하는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2014년 7월 20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주일은 언제인가?

주일은 언제인가?


많은 사람들은 일요일에 주일을 지킨다.
‘주일(主日)’은 말 그대로 ‘주의 날’이라는 의미다.
단언컨대 주일은 일요일이 아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조는 ‘주일성수’다. ‘주의 날’을 줄여 ‘주일(主日)’이라고 칭하며, 대부분 일요일에 지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하나님의 날은 일요일이 아니다. 일요일이 주의 날이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당신의 날이라고 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출애굽기 31:13)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이를 일컬어 ‘나의 안식일’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당신의 백성임을 인지시켜 주시기 위해 안식일 앞에 ‘나의’라는 전제를 두셨다(에스겔 20:20). 이는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약시대 안식일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었듯이 신약시대 안식일의 주인은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님이었다.

인자(예수님)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2:8)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6:5)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 것은 ‘여호와의 안식일’이 곧 ‘예수님의 안식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키셨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이처럼 성경은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안식일을 ‘하나님의 날’로 명시했다. 그래서 사도들은 주의 날인 안식일을 지키며 말씀을 강론하곤 했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 (사도행전17:2)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사도행전 18:4)

성경에서 말하는 주일(主日)은 일요일이 아니라 안식일이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주 여호와의 날이었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주 예수님의 날로 성별하여 거룩히 지켰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이 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요한계시록 1:10)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볼 때가 주후 90년경이었으니 그때까지도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변함없이 안식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주일, 즉 하나님의 날을 지키고 싶다면 일요일이 아닌 일곱째 날 안식일, 토요일에 지켜야 한다.
출처:패스티브닷컴




새언약 진리인 안식일의 규례를 허락주신 
하나님의교회 엘로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